본문 바로가기
사회학

날 것 그대로의 문화, 삶을 향한 처절한 시간이 만든 뉴욕에 대하여

by glenestee 2022. 11. 2.
반응형

 

 

 

1.로마, 파리, 그리고 뉴욕, 우리의 시대를 대표하는 도시들의 역사

 

역사를 살펴보면 어느 시대에나, 전 세계의 시대를 반영하는 하나의 대표 도시가 있었습니다. 1600년대에는 로마였습니다. 전쟁과 전염병으로 고단하고 힘들기만 했던 중세기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던 유럽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예술품에서 인류의 힘과 지혜를 확인했습니다. 그런 지혜를 통해 신에게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힘 만으로도 아름다운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던 것입니다. 1800년대 말부터는 파리였습니다. 파리는 대량 생산으로, 약간의 자본을 소유할 수 있었던 중산층들이 자신의 삶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던 귀족들의 생활에 부분적으로 동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 도시로 부상했습니다. 파리는 궁전 같은 갤러리 라파엣 백화점을 지어서 유럽 전역의 귀족을 닮고 싶어하는 수십 만 명의 중산층 소비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 때 지은 백화점의 궁전 같은 돔의 모습과 명품 문화는 지금도 세계의 소비 문화 일부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변화를 하나의 도시가 상징하던 일은 중세기 이후로만 보아도 로마-파리-뉴욕의 순서로 바뀌며 지속되었습니다. 세계의 문화를 대표하던 이 도시들 속의 트렌드 리더들은 세기를 상징하는 문화 아이콘을 전 세계로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1600년대, 영국의 귀족들은 로마 여행을 일생의 숙원 사업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귀족 자제라면 마땅히 로마 유학을 다녀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이 로마에서 보고자 했던 로마는 그 당시의 로마가 아니라 그로부터 100여 년 전 미켈란젤로가 성 베드로 성당을 짓던 1500년대의 로마였습니다. 이처럼 한 시대를 상징하던 문화 아이콘은 도시가 쇠락한 후에도 소멸되지 않고 전 세계 문화의 저변에 깔리게 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으로 막을 내린 파리의 아름다운 시대가 끝난 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수많은 소비자들을 열광시키는 파리의 명품 문화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뉴욕이 상징하는 문화의 영향력은 상당히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마케팅 프로페셔널들이 지금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쏟아내는 뉴욕의 모습이 사실은 사람들 머릿속에 존재하는 20세기의 뉴욕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기만 한다면 쉽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2. 뉴욕은 우리의 삶에 대한 간절함으로 만들어진 도시

 

그렇다면 20세기의 뉴욕은 어떤 도시였을까요? 뉴욕은 궁핍하던 유럽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찾아온 도시입니다. 정말로 가난에 찌든 빈민들의 소굴이었습니다. 그래도 뉴욕에서는 열심히, 피땀 흘려 일하기만 하면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리가 귀족이 되고 싶은 중산층을 위해 궁전 같은 백화점과 귀족들의 살롱 같은 카페를 지을 때, 뉴욕은 뉴욕항을 드나드는 거친 물건들을 쌓아 두던 창고를 만들었고 그 부둣가를 오가며 고단한 노동으로 생계를 잇는 노동자들을 위한 술집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파리가 귀족을 흉내 내며 샴페인을 터트리거나 명품 옷으로 외모를 치장하는 중산층을 끌어 모을 때, 뉴욕 사람들은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커다란 스테이크를 포켓 나이프로 잘라 배부르게 먹고 싶은 이들을 불러 모으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뉴욕이 큰 부자가 되었을 때도 뉴욕의 건물들, 뉴욕의 길거리의 모습은 가난의 추억을 고스란히 지니게 되었습니다. 파리에는 귀족들이 누리던 부유한 과거를 내다 파는 사업이 수없이 많습니다. 루이비통 핸드백, 레니 마르탱 코냑, 샤넬과 같은 수많은 명품 산업 등은 과거에 화려했던 프랑스 귀족 문화의 환상에 참여하고 싶은 전 세계 중산층들에 의해 번창했습니다. 그에 비해 뉴욕은 이미지가 아니라 고통을 딛고 일어선 과거의 아픔 들을 스토리로 만들어 팔았습니다.  세기의 원로 가수 프랑크 시나트라가 무명시절 피자를 시먹었다는 할렘의 팻찌스,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 후 뉴욕으로 이사 온 이민자들이 부모님들의 책을 내가 팔아, 먹을 것을 구했다는 헌 책방 스트렌드, 극보수파 유태인들이 유대 법을 깨지 않으면서 돈을 벌기 위해 동족끼리 만 장사를 했던 것이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카메라와 사운드 용품 소매점으로 발전된 B&H 등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뉴욕은 무한 가능성을 제공하고, 그에 맞는 무한 경쟁을 부추깁니다. 뉴욕의 문화는 인프라가 잘 갖춰진 대기업 문화가 아니라 가족 단위 자영업자들이 조그마한 길거리 자리 하나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불사하던 처절한 생존 경쟁의 문화입니다. 규모 자체가 보호막이었던 대기업들도 작고 발 빠른 자영업자 들과의 전쟁에 나서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게 변한 곳이 바로 뉴욕입니다. 다시 말해, 첨단 기술을 통한 가상 현실 경제 시대가 열리면서 뉴욕 이민 세대들이 겪던 생존 경쟁과 치열함이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향한 도전의 장이 된 것입니다. 옛 귀족들의 삶을 상징하던 명품 문화가 마음에 들지 않은 뉴요커 들은 명품의 개념도 바꾸었습니다. 장인 정신과 프랑스의 귀족 이미지로 포장해 팔던 명품 회사들마저 명품의 개념을 바꾸지 못하면 뉴욕에서 생긴 이미지에 맞출 줄 아는 소형 신흥 패션 회사들 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뉴욕 문화를 날 것의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품 문화는 힘들었던 현실, 지나간 가난, 비참했던 과거의 옷을 벗어 던지고, 수백 년 동안 돈과 권력을 멋대로 좌지우지하던 귀족으로 변신하고 싶은 환상을 채워줍니다. 반면 뉴욕의 날 것 문화는 가난했던 과거를 자랑스러워하며 자기 운명을 스스로 주도했다는 것을 자부심으로 삼는 문화입니다. 뉴욕은 지저분한 공장 지대에서 세계의 문화 아이콘으로 변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합니다. 뉴욕의 문화 아이콘은 물건들을 보관하던 창고들을 갤러리나 고급 주거 공간으로 개조한 로프트이고, 세계에서 가장 큰돈을 버는 여피들도 35센트짜리 샌드위치와 길거리 커피를 즐겨 마시는 모습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