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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영화 <스틸 라이프>를 통해 살펴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고찰

by glenestee 2022.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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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가하는 고독사의 현실을 반영한 영화 <Still Life>

 

한국에서는 노인 5명 중 1명은 독거노인이며, 5시간마다 한 사람이 고독사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영화는 22년 동안 고독사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업무를 담당하는 영국의 한 공무원 '존 메이'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그린 영화입니다. 아마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고독사가 계속해서 증가한다면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이 영화의 소재처럼 고독사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워주는 담당자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영화는 굉장히 현실적인 소재로 다루어졌습니다. 영화의 제작자로 알려진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이 연출을 담당했고, 에디 마산이 주인공을 맡았습니다. 7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오리종티 감독상을 비롯해 국제예술영화관 연맹상, 특별예술상, 파시네티 최고작품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했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Still이라는 형용사는 '고요한'이란 뜻도 있지만, '사진'을 뜻하는 명사도 될 수 있습니다. 감독은 슬픈 죽음의 문제를 통해 희망 가득한 삶을 그려내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제목처럼 <스틸 라이프>는 정적이 감도는 존 메이의 삶일 수 있습니다. 또한 존 메이가 수십 년 모아온 앨범 속의 고독사로 죽어간 사람들의 살아생전의 사진 속에 멈춰 선 삶입니다. 존 메이의 소소한 일상을 천천히 보여주는 화면과 그 위에 잔잔히 겹치는 음악은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영화를 따라가는 관객의 부담을 한층 덜어줍니다. 영화는 연고자도 없고 가족도 나 몰라라 하는 고독사의 뒤처리를 하는 공무원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냐는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트립니다. 서구 사회도 똑같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남긴 유일한 기억마저 산 사람들에게서 잊힌다면 쓸쓸한 세상사에 슬픔이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덩그러니 유품으로 남은 사진들을 잠잠히 바라보며 잊히는 것이 두려웠을 고인들의 삶을 추억해 내려 사진첩을 매일 뒤적거리는 존의 모습은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 수행 중이라 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이웃집 개도 안 온다.'는 속담은 불의한 청탁을 일삼는 속물적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입니다. 영화 속의 존 메이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고독사한 사람의 유품으로 종교를 추측하며 장송곡을 고르고 추도문까지 작성합니다. 

 

 

 

2.고독사를 처리하며 변해가는 주인공 존 메이의 캐릭터 변화

 

영화는 무뚝뚝하지만 성실한 존 메이의 캐릭터처럼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길로 요령 없이 흘러가는 작품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끝에 죽음이 있는 것이 마냥 빤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작품 안을 가득 채운 존 메이의 삶은 그 끝에 이르러 누구도 예상치 못한 충격과 함께 커다란 울림을 줍니다. 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고 지인들을 찾아 초대하는 직업을 가진 존 메이는 런던 케닝턴 구청 소속 22년 차 공무원입니다. 그의 주 업무는 잊힌 고인의 유품을 단서 삼아 아무도 듣지 못할 추도문을 작성하고 교회나 성당의 성직자들을 연결하여 가족이라고는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는 장례식을 치르는 일을 합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유족들을 찾아내고 유품이나 화장한 유골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말단 공무원 존은 죽은 사람들이 남기는 삶의 유일한 흔적인 사진들을 앨범에 고이 간직하며 저녁마다 넘겨보면서 고독사의 주인공들을 가족을 대신해 추억해 주려 합니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길로 출근하고, 같은 일을 반복하며 혼자 살던 그에게 어느 날 예상하지 못한 고독사의 주인공이 생깁니다. 바로 존의 아파트 맞은편에 살던 '빌리 스토크'가 죽은 채 발견된 것입니다. 같은 날, 회사로부터 정리해고를 통보 받은 존은 자신마저도 빌리가 그 곳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지 못했다는 것에 죄책감까지 느끼게 됩니다. 다른 이들의 쓸쓸한 죽음은 그토록 정성스럽게 돌보아주었지만 정작 자기 코 앞에 살던 이웃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못하고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반성하는 존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지만, 정작 내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같이 누군가의 고독사를 보살피는 직업의 존 또한, 자신의 회사 동료가 자기 집과 근거리에 살고 있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고, 그의 죽음 마저도 알지 못했던 것을 보며 지금 현대사회의 단절됨을 여실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존은 빌리의 마지막 가는 길이자 자신의 마지막 업무가 되어버린 그의 장례식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는 더 많은 시간을 들이며 빌리의 집을 살펴보고, 그가 걸어온 삶을 되짚어 가면서 자신도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정해진 동선을 따라서 움직이고 늘 똑같은 식단의 식사만 하던 그가 처음으로 관할구역을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생전 처음 겪는 예기치 못한 일을 겪게 됩니다.

 

 

 

3. 인간에게는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삶의 고찰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상치 못한 손님처럼 찾아오며 사람이 죽고 나면 그 사람이 진정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투영하듯 영화는 우리네 삶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합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야 말로 자신을 속이는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원시 태양에서 지구가 떨어져 나온 지 46억년, 생물의 시조인 박테리아가 나타나는데 16억년이란 오랜 세월이 걸렸고 3천만종의 생물 집단의 생존 시대가 30억년을 이어왔다고 합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75억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46억년의 지구 나이에 비하면 찰나와 같은 200년 전에는 오늘의 75억 중 어떤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또 한 번의 200년 뒤에는 75억 인구 중 과연 몇이나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입니까? 당신도 어김없이 도둑처럼 다가올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우리 삶의 한계와 현실적인 죽음에 대한 준비와 또 지금 내 삶의 반경 안을 얼마나 살펴보고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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